제목1. 잠시도 한눈 팔 수 없는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야기 전개와 영상, 사운드
DUNE Part1 이 아트레이디스 가문이 아라키스 행성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는 ‘발단’에 해당했다면, Part2에서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프레멘족은 만난 후 프레멘의 생활방식을 배워가고,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는 과정과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공격에 의해 거부할 수없이 결국 퀘사츠 헤더락으로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잠시도 한눈팔 수 없는 전개로 몰입시킵니다.
Part2의 스토리 전개와 영상미 한스짐머의 웅장한 사운드의 조화는 보는 내내 감탄하며 빠져들게 만듭니다. 물론 2편의 빌런인 페이드 로타의 강렬한 등장 후의 활약은 조금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폴이 퀴사츠 헤더락으로 각성한 후의 대결이므로 어쩌면 당연한 듯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오면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한스짐머의 음악이 영화의 반을 완성시켰다는 것과 함께 옷에서 모래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꽤 길다면 긴 러닝타임 동안 아름다운 영상미와 압도적인 사운드로 극의 전개에 몰입하여 감상하게 되는 영화를 만났다는 것에 대해 드니빌뇌브 감독과 배우, 제작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품고 나오게 되는 몇 안 되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목2. “영웅은 인류의 재앙이다.”- 메시아 종교의 이면에 대한 고찰
우리는 히어로 영화를 좋아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줄 영웅이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위대하고 훌륭한 정치인,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줄 대통령이 될 인물이 등장하길 바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영웅은 인류의 재앙이다.“ 라는 메시지를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종교인인 저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부분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프레멘족은 황제의 최정예 부대 사다우카를 이길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Part1에서 리에트 카인즈는 아라키스 행성을 자신들이 꿈꾸는 땅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프레멘족의 다수는 하코넨 가문으로부터 본인들의 영역을 지키는 정도에만 머물며, 그들이 믿는 리산 알 가입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앙을 방패 삼아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안위를 타인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의 안일함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렇다고 종교와 신앙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소홀히 한 채 모든 것을 종교에만 내던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 폴은 프레멘족의 자신을 향한 광신에 의해 본인이 변하게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거듭 본인은 그저 일원 중의 한 명임을 강조하던 폴도 결국 퀴사츠 헤더락으로 각성 후 그들의 신앙 위에 올라타 Part3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을 벌일 것을 영화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질문이 생깁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미래에 일어날 모든 경우의 수를 볼 수 있는 폴은 왜 종교 전쟁을 선포할까요? 온 우주의 퀴사츠 헤더락이 아닌, 프레멘의 신앙에 의해 탄생된 퀴사츠 헤더락으로 그리고 극중 본인이 외쳤던 ’아라키스 공작인 폴 무앗딥 우슬 아트레이디스‘로서의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폴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챠니와의 관계를 잃게 될 것을 염려하여 계속하여 갈등합니다. 부모님에 의해 태어나고 여러 관계들 안에서 자아와 가치관이 형성되는 한 인간이, 설령 시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영웅과 같은 훌륭한 리더를 만나길 고대하는 것은 어쩌면 판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목3. 그럼에도 "리산 알 가입”을 외치게 되는, 티모시 샬라메의 ‘폴 무앗딥 우슬 아트레이디스’
그럼에도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폴‘은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이 영화의 중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고, 폴이 퀴사츠 헤더락으로 각성한 후 가져올 미래가 어떤 것일지 이미 알고 있지만, 퀴사츠 헤더락이 되기 위한 사건들과 여정, 그의 선택을 계속 응원하며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Part3에서는 퀴사츠 헤더락인 그가 어쩌면 전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빌런일 수 있겠지만 듄 Part 1, 2를 보고 난 관객들은 이미 이성이 마비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희생되면서도 계속 “리산 알 가입”을 외칠 그들과 함께 우리도 외치고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관객들 모두를 매료시킨 티모시 샬라메는 듄의 모든 관객들에게 리산 알 가입이 되어있으니, 폴 아트레이디스라는 인물을 이보다 더 잘 소화해낼 배우가 있었을까요? “나에게 폴은 티모시 샬라메뿐이었다.”던 드니빌뇌브 감독의 안목에 박수를 보냅니다.
AI 붐이 일고 있는 현재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현재 주식시장은 AI 버블이라고 할 정도로, AI 관련 주들의 주가가 급등을 하고 있습니다. 뉴스와 신문만 봐도 수많은 기업들은 AI 기술을 접목했다, 혹은 개발한다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현시점에서 AI 기술을 안전하게 사용할 규제책은 마련되고 있을까요? 영화 듄을 본 후 그리고 원자가 듄에 대한 영상들을 시청한 후 한층 더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프랭크 허버트는 1965년에 어떻게 이런 글을 창작할 수 있었을까 저는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AI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베네 게세리트가 유전 교배를 통해 퀴사츠 헤더락을 탄생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무수한 지식 교배를 통해 AI를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관통하여 최적의 것을 최대의 효율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심에 의해 결국 AI의 지배를 당한 후, 버틀레리안 운동 이후 인간 AI를 만들고자 하는 욕심으로 퀴사츠 헤더락을 탄생시킵니다. 이 반복되는 실수를 내 삶으로 가져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또한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말입니다.